알프레드 세이어 마한(Alfred Thayer Mahan)은 단 한 문장으로 20세기를 열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그 명제 위에서 영국은 제국이 되었고, 미국은 두 대양의 패권국이 되었으며, 일본은 진주만에서 스스로를 태웠다.
그런데 21세기의 바다에는 마한이 미처 달지 못한 각주가 하나 붙는다. 바다는 혼자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와 '함께' 지배하느냐가 먼저다.
캐나다가 오늘, 그 각주를 우리에게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부산항을 떠난 잠수함 한 척이 있었다. 도산안창호함. 괌과 하와이를 거쳐 약 15,000킬로미터를 항해해 캐나다 빅토리아에 닿았다.
태평양 한복판에서 캐나다 태평양함대사령부와 교신했다. 캐나다 해군과 나란히 훈련했다. "너희 배와 우리 배가 같이 싸울 수 있겠냐"는 의심에, 한국은 배를 직접 몰고 가 몸으로 답한 게다.
성능은 증명됐다. 도산안창호함은 이미 실전 배치된 검증 함정이다. 반면 독일 TKMS가 내민 212CD는 새 선체 설계의 사실상 신형 잠수함, 아직 생산 단계에 머물러 지연과 비용 초과의 그림자를 달고 있다. 같은 회사의 첫 고객이 됐던 그리스가 시운전 결함으로 인도가 5년 밀렸던 전례까지 있다.
캐나다 국방대학의 한 교수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이건 한국이 지기 어려운 게임(theirs to lose)이라고.
그런데 한국이 졌다.
왜인가. 성능이 아니었다면, 대체 무엇이 저울을 기울였나.
캐나다 총리 마크 카니의 입에 답이 있다. 그는 나토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과 유럽과의 장기 방산 관계를 앞세웠다. 독일과 노르웨이가 이미 같은 212CD를 쓴다는 사실, 그것이 TKMS의 진짜 무기였다.
상호운용성이라는 단어를 곱씹어 보자. 나토는 태생부터 '같은 총알을 쓰는 클럽'이었다. 7.62mm 표준탄과 표준화 협정(STANAG)으로 묶인 군대들. 함께 싸우려면 같은 규격을 써야 한다는 것, 이것이 동맹의 물리적 조건이다.
그러니 캐나다가 산 것은 잠수함이 아니다. '같은 함대'다.
여기서 이 글의 척추가 되는 명제 하나. 방산은 무기를 파는 시장이 아니다. 동맹을 파는 시장이다.
한국은 최고의 잠수함을 팔려 했다. 캐나다는 유럽이라는 함대를 샀다. 성능(Performance)과 신뢰(Trust)가 분리(Decoupling)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최고 성능이 반드시 이기지는 않는다. 같은 진영에 속해 있느냐(membership)가 먼저 묻는 질문이니까.
이 보이지 않는 가산점을 진영 프리미엄(Bloc Premium)이라 불러두자.
물론, 카니의 선택을 비합리라 몰아세우면 그것도 게으른 독해다. 가장 센 반론을 정면에 세워보자.
첫째, TKMS는 20개국 해군에 잠수함을 팔아온 회사다. 수십 년 쌓인 레퍼런스, 곧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이다. 처음 사는 나라 입장에선 실적이 곧 보험이다.
둘째, 산업 보상(offset)마저 TKMS가 더 크게 불렀다. 한화가 700억 캐나다달러의 경제효과를 약속할 때, TKMS는 1600억을 얹었다. 미국과의 관세 전쟁으로 철강과 자동차가 흔들리는 캐나다에게, 이 숫자는 표가 아니라 일자리였다.
셋째, 유럽 안보 블록의 결속. 미국이라는 우산이 흔들리는 시대에 유럽과 배를 맞추는 것은, 캐나다로선 냉정한 헤지(hedge)다.
카니는 계산했다. 그리고 그 계산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 계산의 맨 밑바닥에 깔린 전제 하나가 우리를 서늘하게 한다. 검증된 배보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배를 택하면서까지, 캐나다는 '우리 진영의 리스크'가 '남의 진영의 안정'보다 낫다고 판단했다. 끝내 문제는 성능이 아니라 소속이었다.
그렇다면 현대차의 수소와 리튬은 어떻게 되는가. 방산이 산업 재건과 통째로 묶였듯(Linkage), 한국의 대캐나다 산업 투자도 같은 저울 위에 오른다. 다만 국경선의 두께가 다르다. 배터리와 수소는 상업의 언어로 협상되지만, 잠수함은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안보의 언어로 협상된다. 민수의 문은 조금 더 열려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아직 지켜봐야 할 가설이다.
그래서 이 패배의 진짜 의미는 K-방산이 걸음마라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정반대다. 성능으로는 이미 걸음마를 뗀 한국이, 성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 앞에 처음으로 정직하게 섰다는 데 있다.
그 벽의 이름은 기술이 아니다. 진영의 국경선이다.
폴란드에 전차를, 중동에 자주포를 팔 때 한국은 '무기'를 팔았다. 이제 나토의 심장부에서 요구받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같은 함대'다. 물건을 파는 나라에서 동맹을 파는 나라로. 그 문턱을 한국은 이제 막 밟은 게다.
마한은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했다. 21세기의 각주는 이렇게 되묻는다.
당신은 누구와 '같은 바다'에 속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 바다는, 당신을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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