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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클로 창업자의 정면 돌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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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백하자면, 사업을 하면서) 한동안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불안감에) ‘이 상품이 팔릴까?’, ‘매장에 손님이 올까?’ 걱정하면서 본부 업무와 출장 사이에 짬을 내 매장 상황을 확인하러 다녔다.

2. 불안 이야기를 더 하자면, 1991년 12월부터 1993년 6월까지 은행 대출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 나와 아버지의 재산이 전부 담보로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담보 평가를 다시 받아서 조금이라도 돈을 더 빌리고 싶었다. 회사 운영 자금이 부족해지는 게 아닌가 하고.

3. 하지만 이미 지점장의 결제 권한을 넘어선 상황이라 좀처럼 실행해주지 않았다. 자금 운용이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회사가 위험해질 게 분명했다. 이 일을 계기로 서서히 지방 은행에서 다른 은행으로 갈아탔다.

4. 소매업은 입지가 전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입지는 확실히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입지가 좋으면 임대료가 비싸다. 좋은 입지는 임대료가 비싸서 우리 회사가 출점할 수 없었다.

5. 그래서 입지가 좋은 길에서 한 골목 안으로 들어온 곳이나 뒷길 등 조금 결함이 있어서 임대료가 저렴한 위치에 출점하는 경우가 많았다.

6. 시즈오카시의 첫 매장이었던 구사나기점은 간선도로 옆길로 들어서면 나오는 밭 한가운데에 있었다.

7. 게다가 처음에는 실적이 없어서 매물을 소개받기조차 힘들었다. 20번 넘게 요청하면 겨우 1건 소개받는 정도였다.

8. 처음 소개받은 곳은 규슈 1호점이었는데 입지가 정말 형편없었다. 매장이 완성되고 문을 연 날, 그곳을 소개해준 영업소 소장이 아침 6시에 찾아왔는데, 줄을 선 사람이 없었다.

9. “개업일인데 참 한산하네요?”라고 말하는 소장한테 하마터면 “당신 영업소에서 소개한 물건이잖아요?”라고 대꾸할 뻔 했다.

10. 신용도 없고, 실적도 없는 회사는 나쁜 입지에서 매장을 열고 꿋꿋하게 살아남아, 언젠가 좋은 입지를 소개받을 수 있도록 실적과 인간 관계를 쌓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각오를 다졌다.

11. 서서히 신규 출점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자, 그때부터는 영업소에서 우리 회사에 먼저 좋은 입지의 물건을 소개해줬고, 우리 회사 전속 부서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12. (한편) 간토 지방에 처음 연 매장은 1994년 지바 미도리점이었다. 그런데 장사가 정말 안 됐다.

13. 간토 지방 진출 초기는 굉장히 힘들었다. 간토 지역은 인구가 많은데 유난히 장사가 잘 안 되어서 왜 그런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이윽고 해답을 찾았다.

14. 간토 사람들은 간사이 사람들에 비해 그다지 실속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저렴한 물건이라고 해서 무조건 달려들지 않았다. 상품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게에 발길을 끊었다.

15. 간토 사람들의 눈에 비친 우리 회사는 간사이에서 온, 값싼 물건을 파는 가게일 뿐이었다. 증권가 애널리스트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싸구려니까 품질이 별로겠지”라고.

16. 저렴한 가격으로 고품질의 상품을 만들고자 한다면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해야 했다. (그렇게 품질을 올리는 작업을 했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싼 가격에 고품질의 옷을 판다는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17. 그래서 1995년 10월에는 전국 신문과 주간지에 “유니클로 욕을 하면 100만 엔(약 942만 원)을 준다”는 광고를 냈다. 어설프게 컨설턴트에게 자문을 구하기보다는 직접 고객에게 불만을 듣는 것이 빠르다는 생각에 해본 시도다.

18. 그렇게 거의 1만 건에 달하는 욕을 수집했다. 대부분 품질에 대한 불만이었다. 보내준 내용을 읽다 보면 의기소침해졌지만, 당시 우리 상품의 수준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19. 우리가 내놓은 상품의 결점을 직시하고, 연구하고, 개선했다.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거기서 다음 성공의 싹을 찾아냈다.

20. 현장에서 배운 수많은 실패 덕분에 유니클로 제품의 품질을 향상할 수 있었다.

- 야나이 다다시, <1승 9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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