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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항공유 수수께끼

전 세계 관심이 호르무즈 해협에 쏠린 반면, 글로벌 항공업계의 시선은 한국산 항공유에 맞춰져 있다. 147% 급등한 항공유 가격도 가격이지만, 더 큰 문제는 한국산 항공유를 확보할 수 있느냐다. 한국은 세계 1위로 항공유 시장 30%를 장악하고 있다. 미국은 70% 넘게 한국에서 수입한다. 한국 정부가 지금은 항공유 수출을 상당 부분 허용하고 있지만 언제 나프타처럼 수출을 금지할지 모른다. 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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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항공유 수수께끼

전 세계 관심이 호르무즈 해협에 쏠린 반면, 글로벌 항공업계의 시선은 한국산 항공유에 맞춰져 있다. 147% 급등한 항공유 가격도 가격이지만, 더 큰 문제는 한국산 항공유를 확보할 수 있느냐다. 한국은 세계 1위로 항공유 시장 30%를 장악하고 있다. 미국은 70% 넘게 한국에서 수입한다. 한국 정부가 지금은 항공유 수출을 상당 부분 허용하고 있지만 언제 나프타처럼 수출을 금지할지 모른다. 전 세계 비행기의 3분의 1이 못 뜰 판이다.

한국은 세계 최대의 ‘지상유전(地上油田)’ 보유국이다. SK에너지, GS칼텍스, S-OIL, HD현대오일뱅크 등 4대 정유사가 그 주인공. 이들은 지난 20년간 40조 원 이상 쏟아부어 고도화 설비를 구축했다. 부가가치가 낮은 중질유를 다시 분해해 항공유나 휘발유 등 값비싼 경질유를 뽑아낸다. 규모부터 압도적 세계 1위다. 똑같은 원유를 투입해도 더 깨끗하고 높은 등급의 경질유를 훨씬 많이 뽑아낸다. 수율 극대화에 성공한 것이다. 전 세계 평균 고도화율이 25%지만 한국은 40%에 육박한다.

한국산 항공유는 고도 정제 기술로 황 함량이 적어 전 세계 까다로운 환경 기준을 모두 뚫었다. 규모의 경제까지 달성해 가격 경쟁력도 뛰어나다. 덕분에 한국은 ‘원유 도입액 회수율’이 60%로 세계 최고다. 지난해 수입한 684억 달러의 원유에서 고품질 항공유·휘발유·경유를 뽑아내 407억 달러를 수출했다. 반도체·자동차·기계에 이어 수출 효자 품목 4위다. 한마디로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지만, 세계에서 기름을 가장 잘 정제해서 비싸게 되파는 나라’인 셈이다. 한국은 세계 최대 석유 가공무역국이자 에너지 병참기지다.

정유 산업은 기술과 설비가 곧 경쟁력인 첨단 장치 산업이다. 고도 정제 기술은 단순히 기름을 끓여 나누는 단계를 넘어, 분자 구조를 물리·화학적으로 재배열해 가치를 극대화하는 ‘화학공학의 정점’이다. 끈적끈적한 벙커C유를 촉매와 반응시켜 항공유, 휘발유, 프로필렌 등 고부가 제품을 뽑아내는 마법을 부린다. 고온·고압 상태에서 수소를 첨가해 대기오염의 주범인 황도 제거한다. 값싼 중질유에서 값비싼 경질유를 더 많이 뽑아내 정제 마진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기술이 곧 자원인 시대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이 앞으로 계속 가야 할 길이다.(이철호 논설고문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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