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부터 국내 주요 언론이 일제히 "KF-21, 인도네시아와 16대 협상 최종 단계"라는 헤드라인을 쏟아냈다. KAI 주가는 민감하게 반응했고, 방산 커뮤니티에서는 KF-21의 첫 수출국이 인도네시아로 사실상 확정된 것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러나 KMW가 뉴스 유통 경로를 역추적한 결과, 이 보도는 다음과 같은 세 단계의 중계 구조를 거쳤다.
현대차증권 연구보고서(6월 19일) → 말레이시아 군사전문매체 디펜스 시큐리티 아시아(DSA, 6월 21일) 인용 → 국내 언론 역수입(6월 22~23일)
증권사 리포트는 투자 판단을 위해 잠재 시나리오를 적극적으로 서술하는 장르다. 그것이 외신을 경유해 마치 독립 취재 기관이 확인한 팩트처럼 국내에 재유통된 것이다. '최종 단계'라는 표현의 실질적 무게를 측정하려면, 뉴스 소비자가 아닌 취재 기자의 눈이 필요하다.
그럼 전 세계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KF-21 보라매의 주요 예상 수입국들의 현황을 분석해 본다.
● 필리핀 : 잠재 고객이 아니라 실무가 움직인다
KMW가 방산 당국 및 업계 취재원들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KF-21의 첫 수출국 타이틀에 가장 근접한 국가는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필리핀이다. 그 판단의 근거는 추상적인 의지 표명이 아니라, 이미 작동 중인 세 가지 실무 구조에 있다.
• 의회가 법을 고쳤다
필리핀 상원의원 JV 에헤르시토와 로렌 레가르다, 두 의원은 'SBN 1845' 및 'SRN 161', 즉 '개정 AFP 무기 현대화 프로그램 이행 강화에 관한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법안의 핵심은 두 가지 장벽의 동시 제거다.
첫째, 현행 AFP 현대화 프로그램에서 KF-21 같은 대형 방산 프로젝트에 외국 차관(Foreign Loan) 사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제도적 제약의 해소. 둘째, 15년 단위 '호라이즌(Horizon)' 구간으로 나누어진 경직된 사업 구조의 유연화다.
필리핀 의회는 2026년 상반기 회기 종료 전 법안 통과를 목표로 삼았고, 이를 통해 올해 안에 KF-21 도입 계약에 서명한다는 청사진을 의회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밝혔다.
잠재 고객이 자국법을 고쳐가며 도입 기반을 구축하는 사례는 방산 수출사에서 흔치 않다. 이것이 인도네시아의 '협상 진행'과 필리핀의 '실무 작동' 사이의 결정적 차이다.
• 한국 정부가 금융 통로를 열었다
필리핀 의회의 움직임은 한국 정부의 선제적 제도 정비와 맞물려 있다.
기존 한국수출입은행법상 차입자(구매국) 자기자본의 40%까지로 제한되어 있던 금융 지원 한도를 KF-21 수출 사업에 맞춰 전향적으로 조정했다. 방산·원자력 등 국가 전략 사업 수출을 전폭 지원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전략 수출 금융 펀드 시스템을 준비·승인했다. 그리고 필리핀이 외국 금융 조달로 KF-21을 구매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 정부가 이를 최종 승인하여 협상의 법적·제도적 걸림돌을 제거했다.
이처럼 한국 정부가 금융 공급의 통로를 열어줌에 따라, 필리핀은 자국 내 관련 법령인 '대통령령 415호' 및 'AFP 현대화 프로그램법' 개정으로 화답했다. 양국 정부의 실무 연동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 FA-50이 만든 신뢰 자산과 복합 패키지
필리핀 공군은 FA-50 경전투기 24대를 이미 안정적으로 운용 중이다. 2017년 마라위 전투에서 근접항공지원을 수행하고, 2021년 민다나오 공산반군 지도자 참수 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며 실전 트랙 레코드를 쌓았다. 2024년 호주 피치 블랙(Pitch Black) 훈련에서는 태국 공군의 그리펜을 상대로 모의 교전 승리까지 거뒀다.
KAI는 필리핀에 이른바 '12-12-10 패키지'를 제안 중이다. FA-50PH 12대 업그레이드, FA-50 12대 추가 도입, KF-21 블록 1 10여 대 도입을 묶은 복합 패키지다. 클라크 공군기지 또는 바사 공군기지에 MRO 센터를 설립하는 방안도 협의 중이다. 최근 HD현대중공업의 필리핀 호위함 추가 수주까지 더해지면서 양국 방산 협력은 전투기·함정을 아우르는 복합 패키지 수준으로 격상됐다.
• MRF 사업의 최종 후보: KF-21과 F-16V
필리핀의 다목적 전투기(MRF) 사업은 약 4,000억 페소(약 69억 5,000만 달러) 규모로 전투기 40여 대 조달을 목표로 한다. 초기에는 그리펜, 라팔, 유로파이터, F-16 등 여러 기종이 검토됐으나, 그리펜은 태국-중국 합동훈련을 통해 전술 정보가 중국에 노출된 사실이 드러나 배제됐다. 결국 최종 후보 기종은 KF-21과 F-16V 두 기종으로 압축됐다.
필리핀이 KF-21 블록 1에 특히 관심을 갖는 결정적 이유는 공대공 작전 능력이다. KF-21 블록 1은 중국 공군의 전투기 중 5세대 J-20을 제외한 J-10C, J-11/15/16, Su-30MKK 등을 상대로 공대공 우세를 확보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추었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는 필리핀에게 단순한 전투기 구매를 넘어 안보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 인도네시아 : '최종 단계'의 실체와 신뢰성
인도네시아가 첫 수출국 논의에서 자주 거론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KF-21의 공동개발국이기 때문이다. 당초 전체 개발비의 약 20%(1조 6,000억 원)를 분담하고 최대 48대를 도입하는 계획을 세웠으나, 반복적인 분담금 미납으로 사업은 수년간 표류했다.
최근 양국은 분담금을 6,000억 원으로 대폭 삭감하되, 기술 이전 범위를 축소하고 시제기 5호기를 인도하는 방향으로 실무 합의를 이뤄냈다. 현재 KAI 사천 본사에는 인도네시아항공우주(PTDI) 소속 기술진 37명과 시험비행 조종사 2명이 파견되어 있다. 이것이 증권사 리포트가 '최종 단계'로 표현한 내용의 실체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분담금 정산 협상의 타결과 완제기 16대 구매 계약 체결은 전혀 다른 층위의 사안이다.
이번 인도네시아 뉴스 급부상의 배경에는 현지 언론의 위기감도 작용했다. "필리핀이 한국 차관을 등에 업고 KF-21 첫 수출국 계약을 먼저 체결하면, 공동개발국인 인도네시아의 양산 우선순위가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 섞인 분석을 현지 매체들이 내놓기 시작했고, DSA가 이를 인용했으며, 국내 언론이 그 표면만을 수입한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16대 도입 논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랜 분담금 갈등이 남긴 신뢰 적자, 재정 불안정성, 기술 이전 의혹이라는 변수는 인도네시아가 필리핀보다 빠르게 계약 도장을 찍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인도네시아가 KF-21과 별개로 라팔 전투기를 이미 도입 중이고, F-15EX 24대 MOU 체결, 중국산 J-10C 도입 검토, 터키 KAAN 48대 도입 계약까지 잇따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변화된 전력 확보 전략이 KF-21 단독 계약에 집중할 동기를 희석시키는 측면도 있다.
● 말레이시아 : 5세대 수요의 독특한 논리
말레이시아는 4개 잠재 수입국 중 가장 독특한 도입 논리를 갖고 있다. 노후화된 MiG-29SE는 이미 대체 기종 없이 퇴역했고, F/A-18D 8대와 Su-30MKM 18대도 2035년부터 퇴역이 시작된다. 말레이시아 공군의 2055년까지 중장기 전력 계획인 'CAP 55'는 차기 MRCA를 Su-30MKM보다 선진적인, 사실상 5세대급 전투기로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라팔, 유로파이터, 그리펜 등 기존 4.5세대 단골 후보들이 모두 배제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KF-21이 역시 4.5세대임에도 말레이시아 MRCA 후보에 남아 있는 이유는, NACS(차세대 항공전투체계) 로드맵에 따라 2030년부터 LO급 스텔스 성능을 갖춘 5세대 전투기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가 원하는 초도 인도 시기인 2030~2035년과 KF-21의 진화 일정이 맞아 떨어진다.
단기 계약 가능성은 낮다. 말레이시아는 아직 공식 입찰 공고조차 내지 않은 상태이며, 아세안 내 중국과의 외교적 균형을 고려해야 하는 지정학적 민감성도 변수다. 단, 중장기적으로 KF-21이 말레이시아를 확보한다면, Su-57이 유일한 대안인 상황에서 미국도 암묵적 지지를 보낼 가능성이 있어 그 전략적 의미는 각별하다.
● UAE : 기체 구매가 아닌 파트너십
아랍에미리트는 4개 잠재 수입국 중 가장 큰 구매력을 가진 동시에 가장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는 국가다. UAE는 F-35A 도입이 미국의 정치적 이유로 무산된 후 라팔 80대를 도입해 미라지 2000을 대체 중이나, 장기적으로 F-16E/F를 대체할 차세대 기종이 필요하다.
UAE 공군 관계자들은 이미 KF-21 시제기에 직접 탑승했고, 지난해 전투기 분야 협력 의향서(LOI)도 체결됐다. 그러나 UAE가 원하는 것은 기체 판매가 아니다. 공동개발과 현지 생산을 포함한 장기 전략 파트너십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는 이미 KF-21EX 및 6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 논의도 진행 중이다. 협상이 성사된다면 최대 규모의 계약이 되겠지만, 올해 안 계약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
● 폴란드 : FA-50의 교두보가 KF-21로 이어지는가
동남아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KF-21 수출 경쟁과 별개로, 유럽에서도 의미 있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바로 폴란드다.
폴란드는 2022년 KAI와 FA-50 48대 계약을 체결한 한국의 핵심 방산 파트너다. 이 중 FA-50GF(갭 필러) 12대는 계약 후 불과 15개월 만에 인도됐고, 폴란드 공군 제1 전술비행단이 이미 실전 배치를 완료했다. 나머지 36대의 FA-50PL(폴란드 특화 사양)은 현재 사천에서 생산 중이다.
결정적인 장면은 지난해 6월 26일 사천에서 연출됐다. 폴란드 공군 참모총장 이레네우스 노박(Ireneusz Nowak) 소장이 KF-21 복좌형 시제기의 후방석에 탑승해 직접 시험비행을 실시한 것이다. 공군 참모총장이 잠재 도입 기종에 직접 탑승하는 것은 단순한 의례적 방문과 차원이 다른 신호다.
노박 소장의 방한 일정에는 FA-50PL 생산 현장 시찰, 한국 방위사업청장 면담, KAI CEO와의 FA-50 후속 조치 논의가 포함됐다. KAI는 이 자리에서 폴란드의 차기 전투기 사업에 KF-21을 공식 제안했다.
폴란드가 KF-21에 관심을 갖는 맥락은 분명하다. 폴란드는 러시아·벨라루스 동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 전투기 수를 160대로 산출하고 있다. 현재 운용 중인 F-35A 허사르즈(Husarz) 32대, F-16C/D, FA-50으로는 이 목표에 미달한다. 추가 창설이 필요한 2개 전투비행대대분 32대를 채울 MRCA(다목적 전투기) 사업에서 KF-21이 F-15EX, 유로파이터와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KAI는 FA-50 계약을 "유럽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공식 명명하고 있다. FA-50이 먼저 신뢰를 쌓으면, KF-21이 그 뒤를 잇는다는 전략이다. 폴란드 측에서도 면허 생산과 KF-21 블록 2 후속 개발 참여에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단순 구매를 넘어선 산업 파트너십 논의가 진행 중임을 시사한다.
다만 현실적인 제약도 있다. 폴란드 국방부는 현 공군 전력 트리아드를 F-35A(주력 타격), F-16(주력 다목적), FA-50PL(훈련 및 2선)로 구성하는 구조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 KF-21이 F-16의 자리를 차지하려면 상당한 전략적 설득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폴란드의 최종 결정이 향후 12~18개월 내에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결론: 첫 수출국의 판단 기준은 헤드라인이 아니라 실무 단계
KMW의 종합 판단은 다음과 같다.
KF-21의 첫 해외 수출국은 인도네시아보다 필리핀이 될 가능성이 높다.
5개 잠재 도입국의 현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필리핀은 의회 입법과 양국 차관 승인이 동시 진행 중인 실무 당사자로, 올해 계약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인도네시아는 공동개발국 지위를 갖고 있으나 현 단계는 분담금 정산 합의 수준이며, 다변화된 전력 도입 전략과 재정 불안정성이 변수로 남아 있다.
말레이시아는 NACS 로드맵 기준 2030~2035년 도입을 목표로 한 중장기 후보로, 아직 입찰 공고 전 단계다.
UAE는 공동개발을 포함한 장기 파트너십을 원하는 가장 까다로운 협상 상대로, 단기 계약 가능성은 가장 낮다.
폴란드는 FA-50이라는 신뢰 기반 위에 KF-21 도입 논의가 막 시작된 유럽 교두보로, 향후 12~18개월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국내 언론이 화려한 인도네시아 헤드라인을 소비하는 동안, 진짜 역사는 필리핀 의사당과 한국 수출입은행 사이의 서류들 위에서 써지고 있다.
(사진) KF-21 풀무장 비스트 모드(희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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