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값과 임대료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밴쿠버 한복판에 무려 6,000세대 규모의 초대형 임대주택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대형 개발업체가 아니다. 100여 년 전 이 땅에서 쫓겨났던 캐나다 원주민 공동체다.
1913년 강제 이주, 그리고 113년 뒤
1913년 캐나다 정부는 밴쿠버 키칠라노 지역에 살던 스쿼미시(Squamish) 부족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이후 오랜 법적 다툼 끝에 캐나다 법원은 해당 토지가 원래 스쿼미시 부족의 소유였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2002년 부족은 약 10에이커 규모의 토지를 되찾게 됐다.
그리고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뒤, 이 땅 위에 북미 최대 규모의 원주민 주도 개발 프로젝트 중 하나인 ‘세나크(Sen̓áḵw)’가 추진되고 있다.
최고 58층, 6,000세대 임대 아파트
세나크 프로젝트는 최고 58층 높이의 초고층 건물 여러 동으로 구성되며, 완공 시 약 6,000세대가 공급될 예정이다.
이미 일부 건물은 완공되어 입주가 시작됐으며, 전체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수천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새로운 도시급 주거 단지가 탄생하게 된다.
특히 이 부지는 원주민 보호구역에 속해 있어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정부의 일반적인 용적률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
그 결과, 주변 지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초고밀도 개발이 가능해졌다.
“내 땅에 내가 짓겠다”
프로젝트 발표 당시 주변 주민들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교통 혼잡과 스카이라인 변화, 주거 환경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개발을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었다.
일부에서는 이를 “원주민의 복수”라고 비판했지만, 스쿼미시 네이션은 명확한 입장을 내놓았다.
“이곳은 우리의 땅이며, 우리는 우리 땅에 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기존의 NIMBY(Not In My Backyard·우리 동네에는 안 된다) 논리가 아니라, 오히려 YIMBY(Yes In My Backyard·내 땅에 짓겠다) 의 대표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밴쿠버 주택난의 해법 될까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의 도시경제학자 토머스 데이비도프 교수는 세나크를 두고
“시장이 원하던 바로 그것”이라고 평가했다.
밴쿠버는 수년째 심각한 주택 부족과 임대료 상승 문제를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공급 없이는 집값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해 왔으며, 세나크 프로젝트가 이러한 공급 부족을 완화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모든 주택이 저소득층용 공공주택은 아니다.
대부분의 세대는 민간 시장 임대료 수준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자선사업이 아닌 사업
일부에서는 “원주민 공동체가 지나치게 큰 이익을 얻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오히려 그것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빈야민 아펠바움은 애덤 스미스의 논리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택 공급은 개발업자의 선행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에 의해 움직인다.”
즉, 스쿼미시 네이션은 막대한 수익을 얻고, 밴쿠버는 부족했던 주택 공급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개발업자의 이익과 도시의 필요가 일치할 때 공급이 늘어난다는 전형적인 시장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탄소중립 도시를 목표로
스쿼미시 네이션 지도자 켈실렘(Khelsilem)은 세나크 프로젝트가 단순한 부동산 개발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고밀도 주거와 친환경 기술을 결합한 도시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로젝트는 대중교통 이용을 극대화하고 차량 의존도를 낮추는 한편, 건물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재활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탄소중립 설계를 적용하고 있다.
US Corean View
113년 전 땅을 빼앗겼던 원주민 공동체가 이제는 그 땅 위에 수천 세대 규모의 주택을 공급하며 수십억 달러 규모의 개발 사업을 이끌고 있다.
누군가는 이를 역사적 복수라고 부른다.
하지만 더 정확한 표현은 ‘역사적 역전’에 가깝다.
과거에는 정부가 원주민의 땅을 빼앗아 도시를 만들었다면, 오늘날에는 원주민 공동체가 직접 도시를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에서 밴쿠버가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주택 공급 문제까지 해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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