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메일이 왔다. "혹시 중고차 필요하실까요?"라는 제목이었다. 새로운 종류의 스팸 메일 같은 건가 싶어 무심히 클릭했는데 내용이 다음과 같았다.
"저는 용인에 사는 하OO라고 합니다. 김민섭 선생님 활동은 페이스북에서 가끔 보고 있습니다. 청소년을 위해 좋은 일 많이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강연을 전국으로 다니시는 것 와중에 탁송도 하시고 대중교통도 이용하시는 것 같은데 혹시 차가 있으면 편리하게 쓰실수 있을것 같아 연락드려 봅니다. 제가 2004년식 스포티지가 있는데 저는 아무 불만이 없습니다만 마누라가 너무 걱정을 하여 곧 폐차하게 될 운명입니다. 22년이나 되어 팔리지는 않을 것 같고 필요한 사람이 계속 타주면 가장 좋을 것 같아 선생님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그러니까, 본인이 운전하던 중고차를 준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함께하자 자신을 이렇게 도와달라 메일들이 많이 오지만 이런 제안은 처음이었다. 마침 나는 차가 필요했다. 타고 있는 차의 약정거리를 초과한 지 오래되었던 것이다. 얼마 전 친구가 자신이 20년 탄 차를 폐차한다고 해서 그의 차를 보러 가기도 했다. 굴러만 가면 밥 한 끼 사 주고 가져오려고 했는데 이제 국내에서 부품을 구할 수 없다고 해서 포기한 참이었다. 나는 그에게 차를 보고 싶다고 말했고 용인에 산다는 그와 약속을 잡았다.
나는 웬만하면 차를 보고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가져오려는 마음이었다. 사실 그래야만 했던 것이, 다음날 울산에서 강의가 있었고 다시 강릉으로 가야 했으니까 그 차가 없으면 움직일 방법이 없었다. 용인에서 오후 5시에 차를 받고, 그에게 맛있는 저녁을 한 끼 대접하고, 공교롭게도 근처 수원KT위즈파크에서 KT위즈와 키움의 야구 경기가 있으니까 그걸 보고, 울산으로 하루 일찍 가면 될 것이었다. 아, 계획 너무 완벽하다.
용인에서 그와 만났다. 나보다 10살 정도 많은 50대 초반 남성이었다. 그가 타고 온 2004년식 갈색 스포티지는 육중하면서도 깔끔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전형적인 모습 그대로였다. 외관도 내부도 방금 세차를 마치고 나온 것 같았다. 그는 차를 한적한 데 세워두고 10분 정도 시간을 들여 차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작년에 갈았다는 타이어는 새것 같았고, 내부엔 블랙박스와 하이패스 단말기와 작년에 매립했다는 최신형 터치패드가 있었다. 아니 선생님, 이건 저에게 그냥 주실 차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는 저감장치에 대해서도 말했다. 매연을 포집해서 모아서 태우고 이렇고 저렇고, 나는 그냥 아아 그렇군요, 외계어를 듣는 기분이 되었다. 1년에 한 번 업체에 전화해서 갈아야 하는데 아내가 여기에서 나오는 연기를 너무 싫어한다고도 했다. 아아, 그렇군요.
저녁을 먹자고 말씀드리니 그는 나에게 그러고 나서 야구장에 가면 늦으니 본인이 태워다주겠다고 했다. 자신은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어서 종종 가는데 거긴 사전등록을 안 하면 주차할 데도 없으니 자신이 20분 거리의 야구장 앞에 나를 태워다주고 집에 갔다가 경기가 끝날 즈음 데리러 오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왜요?"라고 물을 뻔했다. 아니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고 저녁을 꼭 대접하고 싶다고 하니 그는 단호하게 답했다. 아닙니다 야구장으로 가겠습니다. 언젠가의 나라면 다시 거절했을 것도 같지만 나는 사람의 호의를 기쁘게 받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그와 함께 야구장으로 가서 꾸벅 인사드리고 9시쯤 다시 여기로 와 주시면 된다고 말했다.
나는 홀가분한 마음에 더해 갑자기 멋진 차가 생겼다는 설렘까지 더해져서, 인근 편의점에 가서 김밥 한 줄과 생수 한 병을 사서 야구장으로 갔다. 경기는 KT위즈가 키움을 꽤 큰 점수차로 큰 위기도 없이 앞서 나갔다. 9시가 다가와서, 나는 슬슬 일어날 준비를 했다. 아직 7회였지만 그를 기다리게 할 순 없었다. 그러면서, 아 그에게 저녁 대접을 못 했으면 뭐라도 좀 사야 하지 않으려나, 그런데 무엇을 사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한 타자만 보고 이제 나가야겠다, 그리고 뭐라도 사야지. 그때 KT위즈의 김현수 선수가 친 파울볼이 관중석으로 날아왔다. 나는 나를 향해 정면으로 날아오는 그 야구공을 멍하니 바라봤는데 공은 나를 훌쩍 넘어 위로 사라졌다. 그래 파울볼을 아무나 잡는 게 아니지. 몸을 돌려 공이 지나간 자리를 바라보는던 중 벽에 맞은 공이 다시 나에게 가까워졌다. 어, 어, 하는 동안 그것은 나에게 와서 떨어졌다.
중학생 시절부터 야구팬으로 살아가는 동안 딱 세 번 파울볼을 잡아봤다. 정말 흔치 않은 일인 것이다. 나는 이 공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옆에 앉은 아이를 줄까. 집에 가서 김대흔 씨나 김린 씨에게 줄까. 그러나 이 공이 나에게 왜 왔는지를 곧 알았다. 그래, 이 공의 주인은 지금 곧 만날 그 사람이었다.
9시에 그가 나타났다. 그가 자신의 집까지 가서 나에게 차를 완전히 양도해 주겠다고 했다. 가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물었다. 혹시 파울볼 잡아보신 적 있습니까. 아이고 아뇨 그런 걸 어떻게 잡습니까. 제가 오늘 파울볼을 하나 잡았는데 이건 선생님 드리라고 저에게 온 것 같습니다 드리고 싶습니다. 저녁 식사를 한사코 거부하던 그는 그것을 기쁘게 받았다. 누구의 파울볼이냐고 물어서 김현수 선수의 것이라고 하니, 와 전직 메이저리그 선수의 파울볼이라니 가보로 간직하겠습니다, 하고 답했다.
그의 집 앞에서 차를 완전히 인계받고, 야구공을 건네주고, 나는 울산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생각했다. 누가 이야기를 지어낸다고 해도 이렇게 누군가가 차를 주고, 그것을 받으러 오고, 그가 야구장에 나를 데려다주고, 나는 거기에서 파울볼을 잡아 그에게 주는 이런 서사는 너무 작위적이지 않은가, 하고. 그의 아내도 그에게 말했다고 한다. 차를 준다고 그냥 받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그리고 20년 된 차를 누가 가져가겠느냐고. 그는 내가 왠지 받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런 작위적인 일들이 꽤나 자주 일어난다. 오랜 친구가 말했다. 너에겐 왜 그런 일이 생길까. '작위적인 그런 일'들이 찾아오게 된 건 아마도 내 선택의 기준이 바뀐 어느 순간부터일 것이다. 무엇이 내게 이익이 되는가, 무엇이 사람들이 잘했다고 할 것인가, 그런 게 아니라, 하나의 큰 태도를 정하고 무엇이 나에게 어울리는 선택인가를 묻고 내 삶의 크고 작은 선택들을 해 나간다.
좋은 태도를 가지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선한 선택들을 해 나가다 보면, 이처럼 선물 같은 일들이 찾아올 것이다. 하늘에서 자동차도 떨어지고 야구공도 떨어지고 또 무엇들이 찾아오겠지. 앞으로 어떠한 일들이 나를 찾아오든 이 삶의 방향만 잃지 않으면 될 것이다. 그러면 모든 선택들은 나를 어울리는 곳으로 이끌 것을 믿는다.
오늘은 차량이전등록을 마쳤다. 잘 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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