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은 단군 이래 936회, 혹은 993회에 달하는 침략을 당한 민족’이라는 주장이 오랜 기간 대중적으로 회자돼 왔다. 일부에서는 이를 근거로 한국을 “세계사에서 가장 많이 외침을 당한 나라”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이 같은 수치의 근거와 계산 방식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 ‘993회 침략설’의 출처
이 수치의 근원은 1970년 백산학회 학술지에 실린 유봉영의 논문 「외구(外寇)와 감결」로 알려져 있다. 해당 논문은 고조선 이전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외침 사례를 집계해 총 931회라고 주장했다. 이후 이 수치는 936회, 993회 등으로 확대 재생산되며 대중 담론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계산이 대규모 국가 전쟁과 국경 지역의 소규모 충돌을 동일한 ‘침략’으로 분류했다는 점이다. 학계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통계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 실제 외침은 얼마나 있었나
국사 교과서에 기록된 주요 대외 전쟁을 기준으로 보면, 국가의 존망이 걸린 대규모 침략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고조선은 위만조선 시기 한나라의 침략으로 멸망했고, 발해 역시 거란에 의해 붕괴됐다. 조선은 근대에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그러나 그 외 다수의 외침은 방어에 성공하거나 국지적 충돌에 그쳤다는 분석이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대외 전쟁을 종합하면 대규모 전면전은 수십 회 수준이며, 소규모 국경 분쟁까지 포함해도 100여 회 안팎이라는 견해도 존재한다.
■ ‘피해자 역사관’에 대한 비판
일부 연구자들은 “끊임없이 침략만 당해 온 민족”이라는 서술이 지나치게 패배주의적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이 주장한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이 한국사의 수동적 이미지를 강화했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로 고구려의 대외 정복 활동, 고려의 요동 정벌 시도, 조선 초기의 대마도 정벌과 4군6진 개척 등 한민족이 적극적인 군사 활동을 펼친 사례도 적지 않다. 이를 근거로 한국사가 단순한 침략 피해사로만 규정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 균형 잡힌 역사 인식 필요
전문가들은 외침 횟수의 단순 합산보다 전쟁의 성격과 규모,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국지적 충돌과 국가 존망을 가른 대전쟁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역사 인식에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993회 침략설’ 논란은 단순한 숫자 논쟁을 넘어, 한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인식의 문제로 이어진다. 한편에서는 지정학적 특성상 빈번한 충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이를 과장해 민족적 열등감이나 피해 의식을 강화하는 방식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역사학계는 감정적 접근을 배제하고, 객관적 자료와 학술적 검증을 통해 한국사의 외침 규모와 성격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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