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함께하는 행복한 공간 Go →

Talk

이혼할 때 두 아들은 전부 전처를 선택했다. 나는 혼자 나왔다.

그리고 15년 뒤, 아들이 갑자기 연락해서 “밥 한번 먹자”고 했다.

내가 이혼하던 해, 큰애는 아홉 살, 작은애는 다섯 살이었다.

가정법원에서 “누구랑 살래?” 물었을 때, 큰애가 동생 손을 꽉 잡고 “엄마요”라고 했다.

나는 다투지 않았다. 다퉈서 이길 수도 없었고, 솔직히 그럴 자격도 없었다.

아이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전처가 더 많이 돌봤다. 나는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한 달에 집에 있는 날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으니까.

서류에 도장 찍던 날 밤, 전처랑 아이 둘 데리고 샤브샤브 집에서 밥을 먹었다.

큰애가 새우완자를 좋아해서, 나는 한 접시를 통째로 넣어 큰애 쪽으로 다 밀어줬다.

작은애는 키가 작아 냄비가 잘 안 보여서, 내 무릎에 앉혀서 내가 떠먹여줬다.

그 뒤 15년.

나는 출장 없는 일로 옮겼고, 원룸 하나 얻어서 지금까지 혼자 살았다.

매달 정해진 날짜에 양육비는 빠짐없이 보냈다. 시간 맞춰, 한 번도 밀린 적 없다.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엔 생활비 좀 보태라고 한 10만 원 정도 더 얹어 보낸 적도 있다.

그런데 전처는 늘 그 “추가분”을 그대로 다시 돌려보냈다. 이유 설명도 없었다.

나는 묻지 않았다. 그 사람 성격을 아니까.

이혼 후 첫 2년은, 아이들 학교 앞에도 몇 번 갔다.

다가가진 못하고, 길 건너에서 그냥 서 있었다.

큰애는 늘 동생 손을 잡고 나왔다. 겨울엔 동생 목도리가 풀리면 쭈그려 앉아 다시 매주기도 했다.

한 번은 큰애가 내 쪽을 스치듯 쳐다본 적이 있다.

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서, 나는 급히 등을 돌리고 군고구마 하나 사서 “지나가던 사람”처럼 걸었다.

나중에 애들이 이사 갔고, 그 뒤로는 더는 안 갔다.

지난주 목요일 오후, 회사에서 자료 정리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받았더니 젊은 남자 목소리가 “아빠”라고 하더라.

손에 들고 있던 펜이 책상 위로 떨어져 두어 번 굴렀다.

그 애가, 이제 다 큰 작은애였다.

형이랑 상의했고, 토요일에 밥을 사겠다고 했다.

나는 “그래, 장소는 너희가 정해”라고만 했다.

끊고 나서 한참 멍했다. 동료가 무슨 일 있냐고 묻길래 “눈에 먼지 들어갔다”고 했다. 그게 제일 덜 창피하니까.

토요일, 깨끗한 셔츠로 갈아입고 약속 장소에 40분이나 일찍 갔다.

큰 식당도 아닌, 동네 만두집 같은 곳이었다. 크지도 않고, 문 앞에 붉은 등이 달려 있었다.

나는 안쪽 자리에 앉아 메뉴판만 몇 번을 뒤집었다.

큰애가 먼저 들어왔다.

키도 크고 덩치도 커졌는데, 눈매는 엄마를 더 닮았다.

작은애는 뒤따라 들어왔고, 검은 뿔테 안경에 마르고 키가 길쭉했다.

둘이 문 앞에서 사람 찾다가 내가 손을 들었다. 큰애가 나를 보고, 동생 어깨를 한번 툭 치더니 빠르게 걸어왔다.

앉고 나니 말이 안 나왔다.

큰애는 겉옷을 의자에 걸고, 작은애는 고개 숙여 휴대폰만 만졌다.

직원이 물을 따라주자 내가 물었다. “뭐 먹을래?”

큰애가 “아빠가 시켜요”라고 했고, 나는 “너희가 골라. 난 아무거나 먹는다”고 했다.

작은애가 메뉴를 보다가 직원에게 물었다. “새우완자 있어요?”

없다고 하니까, 새우 들어간 만두랑 반찬 몇 개를 시켰다.

만두 나오기 전에 큰애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빠, 우리 그냥… 만나야 할 것 같아서 연락했어요. 다른 일 있는 건 아니고.”

나는 “그래. 너희 요즘은 어때?”라고 했다.

큰애는 작년에 졸업해서 광고회사에 다닌다고 했고, 작은애는 대학원 다닌다고 했다.

나는 “잘됐다. 둘 다 잘됐다”라고 했다. 그 말밖에 안 나왔다.

큰애가 잠깐 침묵하더니 또 말했다.

“그동안 양육비는 다 받았어요. 엄마가 따로 모아줬고, 대학 등록금도 거기서 냈어요.”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턱 막혔다.

나는 그냥 “그래… 다행이다” 한 마디만 했다.

식사 내내 작은애는 말이 많지 않았다.

큰애가 가끔 질문하면 내가 대답했다.

딱 “업무 보고”처럼 건조했다. 가족이 아니라, 거래처 사람들 대화처럼.

그러다 큰애가, 그때 샤브샤브 먹던 날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그날 새우완자를 그렇게 많이 먹을 수가 없었는데, 내가 해준 걸 거절하면 내가 상처받을까 봐 억지로 계속 먹었다고 했다.

집에 돌아가서는 속이 너무 안 좋아 화장실에서 토했다는 말까지 했다.

나는 순간 멍해졌다. “왜 그때 말 안 했어?”

큰애가 웃었다.

“아빠가 서운해할까 봐요. 어쩌다 한 번 보는 날이었잖아요.”

나는 그 말에 대답을 못 했다.

고개 숙이고 만두 두 개를 그냥 씹었다.

후반쯤 되니까 분위기가 아주 조금은 풀렸다.

작은애가 조용히 말했다.

“아빠, 엄마가 그러더라고요. 아빠가 우리 버리려고 그런 게 아니라, 밖에서 진짜 바빴던 거라고.”

그 한마디에, 젓가락이 미끄러져 만두가 접시로 툭 떨어졌다.

나는 “맞아… 그때 내가 균형을 못 맞췄다”고 했다.

큰애가 이어서 말했다.

“다 지난 일이에요. 우리도 옛날 일로 싸우자는 건 아니고요.

그냥… 앞으로는 자주 봤으면 좋겠어요. 명절에도 갈 데 하나 더 생기는 거고.”

밥 다 먹고 내가 계산하려고 했더니 큰애가 막았다.

“오늘은 우리가 낼게요. 처음으로 아빠 밥 한번 제대로 사는 거니까.”

나는 괜히 실랑이 안 했다. 지갑을 다시 넣었다.

가게 밖은 좀 쌀쌀했다.

큰애가 차 가져왔다며 데려다줄까 물었지만, 나는 됐다고 했다. 버스 타고 가면 된다고.

그때 작은애가 주머니에서 뭘 꺼내 내 손에 쥐여줬다.

충전식 손난로였다.

“이거 쓰세요. 겨울에 손 차가워지잖아요.”

나는 “응”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애들이 차 타고 가고, 뒷불이 골목을 돌자 안 보였다.

원룸에 돌아와 침대 끝에 앉아 손난로를 한 번 열었다 닫았다 했다.

그때 휴대폰 알림이 떴다. 큰애 메시지였다.

“아빠, 다음엔 샤브샤브 먹으러 가요. 새우완자 있는 집 찾아놨어요.”

나는 “그래”라고 답했다.

그리고 웃는 표정 하나만 덧붙였다.

화면이 꺼지고,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갑자기… 15년이 생각보다 그렇게 길지만은 않았던 것 같았다.

길었는데도, 한 끼 밥 앞에서는 너무 짧았다.

내가 그 사이에 뭘 잃었는지, 그제야 차갑게 느껴졌다.

Talk MasterT
작성자

Talk Master

답글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