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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기 전에 찾아가는 사람은 누구인가 — 가장 낮은 곳에서 다시 묻는 교회의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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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기 전에 찾아가는 사람은 누구인가

— 가장 낮은 곳에서 다시 묻는 교회의 양심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 돈의동 쪽방촌을 찾았다. 여름철 폭우와 폭염을 앞두고 가장 취약한 곳으로 먼저 발걸음을 향했다. 냉방시설은 충분한지, 월세는 얼마나 되는지, 지원금은 받았는지, 몸은 괜찮은지를 물었다고 한다.

정치는 원래 이런 것이어야 한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권력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책임 말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다른 이유로 부끄럽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 교회가 먼저 해야 했던 일을 정치가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은 분명했다. 예수는 성전 안에서 권력자들과 오래 머물지 않았다. 병든 사람 곁으로, 세리의 집으로, 길바닥으로, 과부와 고아와 죄인 곁으로 갔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의 기준도 명확했다.

"너희가 여기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주교들은 얼마나 자주 비 오기 전 쪽방촌을 찾았는가. 사제들은 얼마나 자주 폭염이 오기 전 반지하를 찾았는가. 수도자들은 얼마나 자주 홀몸노인과 노숙인 곁에서 함께 땀을 흘렸는가.

우리는 성당을 짓는 일에는 익숙했지만,

가난한 이들의 집을 살피는 일에는 둔감해지지 않았는가. 교회의 일도 이제 모두 행정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어설픈 행정.

우리는 강론에서는 가난한 이들을 말했지만, 실제로는 편안한 회의실과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가난을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았는가.

예언자는 언제나 질문했다.

"비가 내린 뒤에 구호물품을 들고 오는 사람이 아니라, 비가 오기 전에 지붕을 고쳐주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교회는 원래 사후처리 기관이 아니었다. 상처가 생긴 뒤 위로하는 공동체에만 머물지 않았다. 아픔이 오기 전에 곁에 있는 공동체였다.

오늘 쪽방촌 골목에서 우리가 본 것은 단순한 현장 방문이 아니다. 그것은 교회를 향한 질문이다.

누가 가장 낮은 곳을 먼저 기억하는가.

누가 가장 작은 이들의 이름을 부르는가.

누가 가장 어려운 이들을 자기 발로 찾아가는가.

우리는 정치를 칭찬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를 성찰해야 한다. 쪽방촌 가난한 이들이 "우리 동네에 처음으로 누군가 와주었다"고 말하는 순간, 교회는 이미 오래전 그 자리를 비워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비가 내리기 전,

폭염이 오기 전,

죽고 싶다는 말이 나오기 전,

우리는 과연 한 번이라도 먼저 찾아갔던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오늘 고개를 들 수 없다.

그리고 바로 그 부끄러움에서부터 다시 복음은 시작되어야 한다.

천주교정의평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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