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LA 한인타운.
그때만 해도 ‘K-푸드’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간판 하나, 메뉴 몇 개, 그리고 뜨거운 뚝배기에서 피어오르는 김.
그게 전부였다.
그날도 가게 문을 열며 부부는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걸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서울대 법대를 나온 남자.
이미 한국에서 냉면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쉰을 넘긴 나이에, 낯선 나라에서, 아무도 모르는 음식으로.
그리고 그 곁에는
매일 비행기를 타고 출퇴근하던 여자가 있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새벽 첫 비행기를 타고
LA에 도착해 시장을 돌고, 식당을 열고, 손님을 맞고,
다시 밤 비행기로 돌아가던 사람.
누군가는 그걸 무모함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고집이라고 했지만,
결국 그것은 ‘헌신’이었다.
가게 이름은 북창동 순두부(Buk Chang Dong, BCD).
서울의 한 골목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그 골목처럼,
이 작은 식당에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인들,
그다음에는 밤새 일하던 봉제 노동자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배우, 정치인, 관광객까지.
새벽 2시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식당.
지친 사람들이 들어와
뜨거운 국물 한 숟갈에 숨을 돌리던 곳.
그리고 어느 날,
그 식당은 역사의 한 장면이 된다.
2020년,
기생충이 골든글로브를 수상한 밤.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이
시상식 뒤풀이 장소로 선택한 곳.
레드카펫도, 샴페인도 아닌
뚝배기 순두부가 끓고 있는 식당.
그날 밤,
한국 문화가 세계의 중심에 섰고,
그 중심 어딘가에는
조용히 끓고 있는 순두부 한 그릇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따뜻하게만 끝나는 건 아니었다.
한국으로 돌아간 이름,
그러나 지켜지지 못한 브랜드.
원조는 몇 개의 매장으로 머무는 동안
비슷한 이름, 비슷한 간판들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결국 원조는 물러났고,
모방은 살아남았다.
이 아이러니는
사업의 냉정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을 묻는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
그리고 2026년 3월,
그 이야기를 시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89세.
한 사람의 삶이 끝났지만,
그가 남긴 것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었다.
<한인들에게 남긴 것>
그 순두부집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었다.
처음 미국에 온 이민자들에게는
“버틸 수 있는 힘”이었고,
늦은 밤까지 일한 사람들에게는
“집에 돌아가기 전 마지막 위로”였고,
2세, 3세들에게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기억하게 하는 맛”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언어가 서툴러도,
직업이 달라도,
같은 국물을 나눠 먹었다.
그 한 그릇은
‘한국’ 그 자체였다.
이제 그를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그가 만든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뚝배기는 끓고 있고,
누군가는 그 국물을 한 숟갈 뜨며
조금은 덜 외로워진다.
어쩌면 그게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일지도 모른다.
“타지에서도, 우리는 따뜻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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