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 현금의 상당 부분을 미국 기술주로 옮겼다.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확신이 없어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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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변화를 최전선에서 목격하는 입장에서,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십 년 뒤에도 지금처럼 돈이 될지 자신이 없다. 주변 지인들도 별다르지 않다. 변호사들은 업무의 상당부분을 AI에게 맡기기 시작했고, 개발자들은 자기 일을 자동화하는 코드를 짠다. 인도의 공장에서는 머리에 카메라를 달고 자신의 작업을 AI에게 학습시킨다. 우스운 장면인데 웃기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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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역사를 들춰보면 비슷한 장면들이 있었다.
산업혁명, 베틀을 짜던 수공업자들은 기계를 부수러 다녔다. 러다이트 운동이다. 그들의 분노는 정당했지만, 결과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은 베틀을 부순 이들이 아니라 공장 지분을 사둔 사람들이었다. 인터넷이 도입되던 시절도 비슷했다. 동네 서점과 비디오 가게가 문을 닫는 동안, 아마존과 넷플릭스의 주식을 일찍 사둔 사람들은 조용히 자산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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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형태만 AI로 바뀌었을 뿐, 자본을 가진 쪽이 이긴다는 공식은 그대로일 것 같다. 흥미로운 건 사람들의 행동이다. 작년 한 해 한국인이 미국 주식에 부어둔 돈이 250조를 넘었다고 한다. 사상 최대치다. 같은 기간 시중은행들은 80년대생까지 희망퇴직 대상이었다. 낮에는 자기 사라지는 산업에 출근하면서, 밤에는 그 일자리를 없애는 회사의 주식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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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모순처럼 보였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게 가장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다. 대중은 머리로 분석하기 전에 손이 움직인다. 돈이 어디로 흐르는지 직감으로 안다는 의미다. 물론 정부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일자리의 소멸 속도가 임계점을 넘으면 자동화세든 기본소득이든 특정 형태의 안전망이 만들어질 거다. 시장이 무너지면 세금을 걷을 곳이 없으니까 정치권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제도가 자리 잡기까지 최소 10년 이상은 걸릴 거다. 문제는 그 공백기다. 자본을 가진 사람과 근로소득에만 의존하는 사람의 격차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벌어지는 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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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일단 옮겼다.
노동 소득의 일부를 자본 소득의 영역으로 천천히 이전시키고 있다. 거창한 투자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 일자리를 위협하는 바로 그 기술에 지분을 조금이라도 걸어두는 게, 이 공백기를 견디는 가장 보수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강조하지만 이건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지지 않는 법에 가깝다.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의 편에 서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구조적으로 밀린다. 이 상황 자체가 불공평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공평을 외친다고 게임의 룰이 바뀌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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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핵심은 어떤 종목이냐가 아니다.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자본의 편에 서느냐, 노동의 편에만 서느냐다. 나는 노동이 신성하다고 생각하지만, 신성함과 보상은 별개다. 오히려 자본을 가져야 노동의 신성함을 지킬 수 있다. 먹고살 걱정이 없어야 일의 의미를 챙길 여유가 생기고, 부당한 조건을 거절할 힘도 생기니까. 자본 없이 노동만 붙들고 있다간 그 일을 사랑할 자유조차 빼앗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자본을 모은다.
노동을 끝까지 존엄하게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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