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의 누'를 쓴 이인직, 한국 최초의 신소설이자 근대 문학의 개척자라고 교과서는 가르친다. 그런데 이 소설을 쓴 이인직이 대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
1862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 유학 시절 도쿄정치학교에서 고마쓰 미도리라는 교수를 만난다. 훗날 조선 통감부 외사국장이 되는 인물이다. 이 인연으로 이인직은 신문 주필을 거쳐 1906년 '혈의 누'를 발표하고, 1907년에는 이완용의 지원을 받아 '대한신문' 사장이 되며 이완용의 최측근 비서가 된다.
고마쓰 미도리의 회고록 《메이지 외교 비화》를 보면 일제가 이완용을 움직이기 위해 그의 심복인 이인직을 철저히 이용했음이 드러난다.
*결국 1910년 8월 4일, 이인직은 일본어를 못하는 이완용의 명을 받아 고마쓰와 비밀 교섭을 벌였고, 이 밀담은 8월 22일 한일병합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도화선이 되었다.
*"나라를 넘기면 우리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나라가 팔리는 긴박한 순간에도 일제가 제시한 은사금 조건에 "대단히 관대한 조건"이라며 반색했던 그는, 사망 직후 총독부로부터 병합 공로를 인정받아 장례비까지 지원받았다.
*그의 친일 행적은 문학 작품 속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혈의 누'에서는 일본을 조선의 구원자이자 문명국으로 묘사하고, '은세계'에서는 고종의 강제 퇴위를 '큰 개혁'이라 칭송했으며, '모란봉'에서는 의병들을 무지한 폭력 집단으로 비하했다.
수십 년간 신소설의 선구자로만 포장되어 온 이인직, 이제는 그의 문학사적 공로 뒤에 가려진 매국의 민낯도 함께 알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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