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이란 사이에 이토록 많은 사연이 있었다니, 놀랍습니다. 제가 몰랐던 사실이 많군요. 조금 긴 글이지만 매우 유익합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때 과 박정희 정부는 친아랍 성명을 전격 발표했다. 이스라엘은 1978년 주한 대사관을 철수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로 한국 내 은행에 예치된 이란의 원유 수출대금 약 60억 달러의 송금이 막히자, 한국은 유로화로 환전하는 우회로를 설계했다. 2023년 마침내 카타르 국영은행 QNB의 이란 중앙은행 계좌로 자금을 이체하는 데 성공했다. 그 카타르에 예치된 자금이 바로 오늘 이슬라마바드 종전협상의 핵심 선결 조건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한국의 외교적 노력이 현재 진행 중인 중동 평화의 실타래와 연결돼 있는 것이다.
-7세기 신라 고분에서 사산조 페르시아 계통의 유리 공예품이 출토된 것은 사실이고, 당시 이슬람 지리서들이 신라를 "황금의 나라, 침략받지 않는 낙원"으로 기록한 것도 사실이다.
-이란의 구전 서사시 '쿠쉬나메'의 전체 10,129절 가운데 무려 3,900여 절이 신라를 배경으로 한다. 페르시아인들의 집단 기억 속에 신라는 "가장 안전하고 가장 고귀한 우방"이었고, 그 기억이 서사시로 결정됐다.
-이란에서 한국 드라마 <대장금>과 <주몽>의 시청률이 80~90%에 달했던 것은 이 1,400년의 문명적 친연성이 현재에도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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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옳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반인권적 행동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스라엘은 즉각 반발했다. 이 대통령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는 이 대통령의 선택이 옳았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오늘 이스라엘이 다시 레바논 민간인 지역을 폭격하며, 그 판단이 옳았음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때 - 홀로코스트가 가르친 것
이 대통령은 지난 10일 SNS에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주민의 시신을 건물 옥상에서 밀어 떨어뜨리는 영상을 공유하며 "우리가 문제 삼는 위안부 강제, 유대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이 문장의 핵심은 비교가 아니라 원칙이다. 위안부 강제 동원은 전쟁을 빌미로 민간인에게 가해진 반인권적 범죄였다. 홀로코스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조직적인 인종 말살이었다. 이스라엘은 그 홀로코스트의 직접적 피해자이자 증인이다. 그렇기에 이 대통령의 지적은 더욱 준엄하다. "당신들이 당했던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이 타인에게 그것을 가하고 있다." 이것이 이 대통령 발언의 도덕적 골자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홀로코스트 추모일 전야에 유대인 학살을 경시하는 발언"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홀로코스트를 경시한 것은 이 대통령이 아니다. 홀로코스트의 교훈을 경시한 것은 이스라엘 자신이다. 이 대통령은 11일 재차 답했다. "끊임없는 반인권적 반국제법적 행동으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전 세계인들의 지적을 한 번쯤은 되돌아볼 만도 한데 실망이다." 이것은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 박정희도 이스라엘에 등 돌렸다 - 국힘과 태극기부대는 알고 있는가
야권에서는 "국익을 해치는 외교 갈등"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그들이 추앙하는 박정희 대통령도 이스라엘에 등을 돌린 전례가 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과 오일 쇼크가 한국 경제를 강타하자, 박정희 정부는 그해 12월 15일 4개항의 친아랍 성명을 전격 발표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점령한 영토에서 철수해야 하며, 팔레스타인의 정당한 주장은 존중돼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스라엘은 1978년 주한 대사관을 철수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더 나아갔다. 정부가 땅을 무상으로 공여하고 아랍권 국가들이 자금을 모아 1976년 이태원에 모스크가 건립됐고, 1977년 서울 강남의 도로에는 '테헤란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생겼다. 두 나라가 도로명을 맞교환한 것은 그 이상의 의미였다.
오일 쇼크를 돌파하고 이런 노력들이 중동 건설 붐의 가장 큰 수혜자로 한국을 만들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한다.
□ 일본이 이길 수 없는 깊이 - 한국 정부의 신뢰와 1400년전 서사시
요즘 일본이 부산하다. 다카이치 총리가 이란 대통령과 직접 통화를 추진하고, 아베 전 총리의 이란 방문을 모델 삼아 '중재 외교'를 자임하며 나섰다. 일본 언론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일본과 이란의 각별한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위기 속에서 일본이 이란 카드를 꺼내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과 이란의 관계를 일본이 따라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일본의 이란 외교가 기껏해야 아베의 2019년 방문에서 시작된다면, 한국은 이미 반세기 전에서울에 모스크를 세웠고, 테헤란로와 서울로를 맞교환했다. 박정희 정부가 오일 쇼크의 파고 속에서 이스라엘 대사관 철수를 감수하면서까지 친아랍 성명을 발표하고, 두 나라의 수도에 서로의 이름을 새긴 것은 신뢰의 구축이었다.
그 신뢰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이란 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리자, 한국 내 은행에 예치된 이란의 원유 수출대금 약 60억 달러가 졸지에 동결됐다. 한국으로선 받은 원유의 대금을 돌려주고 싶어도 미국 제재 탓에 돌려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손을 놓지 않았다. 달러 송금이 막히자 스위스를 중개국으로 끌어들여 유로화로 환전하는 우회로를 설계했고, 2023년 마침내 카타르 국영은행 QNB의 이란 중앙은행 계좌로 자금을 이체하는 데 성공했다. 이란이 즉시 찾을 수 있는 돈은 아니었지만, 한국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리고 그 카타르에 예치된 자금이 바로 오늘 이슬라마바드 종전협상의 핵심 선결 조건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한국의 외교적 노력이 현재 진행 중인 중동 평화의 실타래와 연결돼 있는 것이다.
박정희의 친아랍 성명에서, 문재인 정부의 카타르 우회 송금까지. 보수든 진보든,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한국은 이란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가능한 길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 신뢰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한국과 이란의 인연은 1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1세기 이란의 서사시 '쿠쉬나메'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7세기 사산조 페르시아가 아랍에 멸망하자, 왕자 아비틴 일행이 중국을 거쳐 '바실라(신라)'로 망명했다. 신라왕은 이들을 기꺼이 맞아들였다. 아비틴은 신라 공주와 혼인하고, 그들의 아들 페리둔은 훗날 페르시아의 폭정자를 물리치는 구국 영웅이 된다. 페르시아-신라 혼혈의 영웅이 이란을 구했다는 서사다.
물론 '쿠쉬나메'는 역사 기록이 아니라 구전 서사시다. 그러나 7세기 신라 고분에서 사산조 페르시아 계통의 유리 공예품이 출토된 것은 사실이고, 당시 이슬람 지리서들이 신라를 "황금의 나라, 침략받지 않는 낙원"으로 기록한 것도 사실이다. 수백 년간 구전으로 이어진 이 서사시의 전체 10,129절 가운데 무려 3,900여 절이 신라를 배경으로 한다. 페르시아인들의 집단 기억 속에 신라는 "가장 안전하고 가장 고귀한 우방"이었고, 그 기억이 서사시로 결정됐다.
이란에서 한국 드라마 <대장금>과 <주몽>의 시청률이 80~90%에 달했던 것은 이 1,400년의 문명적 친연성이 현재에도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이란인들은 한국인을 "정서적인 형제 나라"라고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은 1,400년을 이어온 신뢰의 결실이다. 아베가 한 번 방문했다고 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 유럽이 먼저 말했고, 이 대통령은 그 대열에 합류했다
작년에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선언하며 이스라엘로부터 원색적 공격을 받았다. 독일 메르츠 총리도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병합을 공개 비판했다. 올 4월에 스페인 산체스 총리는 이스라엘군이 유엔 레바논 평화유지군 소속 스페인 군인을 구금하고 이탈리아 호송대에 경고 사격을 가한 사건을 들어 "생명과 국제법을 경시하는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이탈리아도 이스라엘 대사를 초치했다. 폴리티코는 "이스라엘에 대한 유럽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이미 서방 세계가 말하고 있던 것을 아시아에서는 처음 말한 것이다.
오늘도 이스라엘은 또 레바논을 폭격했다. 미국과 이란이 47년 만의 역사적 종전협상을 이슬라마바드에서 진행하는 바로 그 시각에, 이스라엘군은 레바논 남부 나바티예 지역의 마을들을 연속 공습해 최소 15명을 숨지게 했다. 평화 협상 테이블 옆에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미·이란 휴전 합의 직후인 8일, 이스라엘은 기다렸다는 듯 레바논 전역에 개전 이래 최대 규모의 공습을 퍼부었다. 단 10분 동안 100회 이상의 공격이 이뤄졌다. 레바논 전역에서 최소 357명이 숨지고 1,223명이 다쳤다. 난민 캠프와 민간 지역이 폭격의 예외가 되지 않았다. 레바논 주민은 말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사람들과 아이들뿐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네타냐후에게 자제를 요구했으나 폭격은 멈추지 않았다. 유럽의 유엔 평화유지군을 구금하고 경고사격을 해도 멈추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비판이 쏟아져도 멈추지 않았다. 이것이 이재명 대통령의 비판이 단순한 외교적 감정이 아니었음을 오늘도 증명하고 있다.
□ 원칙은 원칙이고, 국익은 국익이다 - 그런데 이번에는 둘이 일치했다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 단순한 인권 메시지를 넘어, 호르무즈 해협 통과 문제를 둘러싼 이란과의 관계 회복을 염두에 둔 전략적 시그널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한국은 이 시점에 이란에 특사를 파견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1973년 친아랍 성명도, 서울-테헤란 도로명 맞교환도, 그 배경에는 오일 쇼크를 돌파하려는 국가적 실리 계산이 있었다. 그것을 두고 아무도 박정희를 비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선견지명이라 칭찬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서 실리 계산보다 더 본질적인 것을 읽는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가 팔레스타인에서 가해자가 되어가는 역사의 아이러니 앞에서, 한국 대통령이 "인권은 최후의 보루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는 사실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국제인도법은 준수돼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은 타협할 수 없는 최우선 가치"라는 말은 외교적 언어가 아니라 신념의 언어였다. 결과적으로 명분과 실리가 같은 방향을 가리켰을 때, 그것이 가장 탁월한 외교다. 이 대통령은 그것을 해냈다.
국제인도법은 전쟁 중에도 민간인을 보호한다. 시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존엄하게 다뤄져야 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에만 요구되는 기준이 아니라 모든 분쟁 당사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인류 보편의 원칙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 원칙을 말했다. 이스라엘이 반발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야권이 "국익을 해친다"고 비판하지만, 박정희도 걸었던 길이고, 마크롱도 산체스도 걷고 있는 길이다.
인권은 외교의 불편함보다 크다. 그리고 이 대통령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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