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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시한, 왜 중동에서는 통하기 어렵나?

트럼프의 시한, 왜 중동에서는 통하기 어렵나? 중동의 시간은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리야드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일이다. 양국 간에 협의할 일이 참 많았다. 에너지, 산업, AI, IT, 교육, 보건 — 분야가 다양했다. 사우디 정부 관료를 만나 논의를 진행해야 하는 사안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사안이든 흐름은 비슷했다. 어렵게 미팅을 잡는다. 분위기는 좋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에 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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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시한, 왜 중동에서는 통하기 어렵나?

트럼프의 시한, 왜 중동에서는 통하기 어렵나? 중동의 시간은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리야드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일이다.

양국 간에 협의할 일이 참 많았다. 에너지, 산업, AI, IT, 교육, 보건 — 분야가 다양했다. 사우디 정부 관료를 만나 논의를 진행해야 하는 사안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사안이든 흐름은 비슷했다.

어렵게 미팅을 잡는다. 분위기는 좋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에 다시 만나서 후속 협의를 진행합시다."

그렇게 합의하고 헤어진다.

그리고 연락이 오지 않는다.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고, 다시 연락을 해야 겨우 연결된다. 그러면 "알아보겠다"고 한다. 또 시간이 흐른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길게는 몇 년이 지나간다.

그 시절 나에게 각인된 세 마디가 있다.

"금방 결정 난다더니, 몇 년째 결론이 안 난 사안이 있다."

"분명히 yes라고 들었는데, 다음 회의에서는 딴 이야기를 한다."

"담당자가 부재하면 모든 게 올스톱이다."

부재 이유는 늘 같았다. 해외 휴가, 다른 부서 발령, 이직. 담당자가 한 번 바뀌면 그동안 쌓아온 협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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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문화적 배경이 있다.

'인샤알라(إن شاء الله)'.

"내일까지 해달라"고 하면 돌아오는 말이다.

왜 그럴까.

미래는 인간이 확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코란에도 "내일 그것을 하겠다"고 단정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이라고 말하라는 구절이 있다(18:23–24).

이건 단순한 말버릇이 아니다.

시간을 대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 시간 감각은 아랍권을 넘어 페르시아권 이란에까지 이어진다. 표현 방식은 달라도, 미래를 인간이 확정할 수 없다는 세계관은 이슬람 문화권 전체가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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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사우디만의 얘기가 아니다. 걸프 지역 외교 전반, 그리고 중동 이슬람권 여러 나라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

구조는 단순하다.

결정은 소수 핵심이 한다.

그 아래는 전달한다.

지시가 내려오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yes"는 "검토해보겠다"이고,

"검토해보겠다"는 "지금은 답할 수 없다"에 가깝다.

게다가 라마단과 혹서기가 지나가면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길지 않다. 타이밍을 놓치면 한 해가 지나간다.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일하며 배운 한 가지는 분명하다.

중동의 시간은 한국이나 워싱턴의 시간과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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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사우디가 이 정도라면, 이란은 어떨까.

사우디는 "결정이 느린 나라"다.

이란은 "결정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더 오래 걸리는 나라"다.

차이는 구조에서 나온다.

사우디는 권력이 한쪽으로 모여 있다.

결심이 내려지면 늦어도 움직인다.

이란은 다르다.

최고지도자, 혁명수비대, 성직자 회의 — 여러 권력 축이 동시에 관여한다.

하나의 입장을 만들기 위해 내부 조율이 필요하다.

그 자체가 시간이다.

여기에 외교 환경까지 다르다.

사우디는 미국과 80년 동맹국이다. 수십 년 쌓아온 통신선과 인적 네트워크가 있다.

이란은 1979년 혁명 이후 47년째 미국과 외교 단절 상태다.

메시지는 오만, 카타르, 파키스탄 같은 제3국을 거쳐 전달된다. 속도가 더 느려질 수밖에 없다.

이 차이를 이해하면, 최근 상황이 보인다.

트럼프는 "3~5일 안에 답을 가져오라"고 한다.

워싱턴 기준에서는 압박이다.

하지만 중동 기준에서는 시간 감각 자체가 맞지 않는다.

그래서 이란의 반응을 이렇게 봐야 한다.

답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답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거나 만들고 있는 단계일 수 있다.

여기에 외부 압박이 들어오면 상황은 더 단순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압박은 내부 균형을 흔든다.

강경파는 "버텨야 한다"는 근거를 얻고,

온건파는 "지금 양보하면 굴복으로 보인다"는 부담을 안는다.

압박이 오히려 합의를 늦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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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반복해서 본 장면이다.

사우디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답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거절은 아니었다.

대개는 아직 답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압박하면 일이 빨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늦어진다.

이 지역에서는 속도가 아니라, 타이밍이 결과를 만든다.

그래서 지금 상황을 이렇게 봐야 한다.

강한 발언이 나온다고 해서 상황이 급변하는 것도 아니고,

침묵이 이어진다고 해서 협상이 깨진 것도 아니다.

이건 중동식 시간으로 움직이는 협상이다.

중동에서 외교는 늘 이렇게 진행돼 왔다.

겉으로는 말이 앞서고,

속에서는 시간이 흐른다.

그래서 이 국면은 쉽게 깨지지도, 쉽게 풀리지도 않는다. 시간 자체가 협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시간이 결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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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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